[기고글] 사상통제 100년, 이제 국가보안법 폐지의 힘을 모으자 / 통일뉴스

작성자
bomhanl
작성일
2025-08-26 05:48
조회
491
사상통제 100년, 이제 국가보안법 폐지의 힘을 모으자
[기고] ‘치안유지법-국가보안법 사상통제의 역사 100년’ 기획강의에 부쳐 / 이정희 국가보안법폐지교육센터 대표

기사 링크 :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4331

내란의 밤, 계엄의 밤

1979년 10월, 국민학생이었던 내 기억 속의 계엄은 갑자기 라디오 방송이 멈추고 흘러나오던 음울한 조곡,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던 밤 9시 통행금지였다. 35년을 뛰어넘어 되풀이된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 생방송,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다는 포고령에는, 대통령의 ‘배려’로 통행금지는 빠져 있었다. 그러나 곧 날이 밝으면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무수한 사람이 연행되고 각계의 사람들이 영장 없이 체포되어 군사재판에 회부될 상황이 눈앞에 떠올랐다.

다행히 계엄 선포 2시간 30분 만에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졌다. 헌법의 계엄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다. 이것이 “시민들의 저항” 덕분이었음은 헌법재판소도 인정한 바다.

윤석열 계엄의 명분은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였다. 이제야 드러나는 것처럼, 윤석열은 거듭된 무인기 도발 등으로 북과 충돌상황을 만들어내려다 북이 응하지 않자 이 명분을 꺼내든 것이다. 만에 하나 북과 충돌상황이 벌어진 뒤 계엄을 선포했다면, 국회가 즉시 해제 의결을 할 수 있었을까. ‘간첩단’이 적발되었다며 민주노총 등 진보진영만을 체포·수거대상자로 지목해 군을 동원했다면, 군이 지체할 수 있었을까. 분단과 대결은 헌법의 통제장치를 무력하게 만들고,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헌법 위에 있다.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탄핵을 이뤄내고 극우 재집권을 막았지만,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윤석열 내란의 발원지를 찾아 뿌리를 없애야 한다. 이승만 이후 모든 극우정권은 남북대결상황에서 국가 존립이 위태롭다며 ‘종북 빨갱이 반국가세력 척결’을 내세워왔다. 국가보안법사건과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등 진보진영을 겨냥한 공격은 극우정권의 지지율 회복에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극우 정치집단과 종교, 유튜버세력은 북한, 중국, 진보세력, 이주민, 동성애 등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똘똘 뭉쳐 세력을 유지하고 젊은 층을 끌어들이며 재기를 노린다.

어떻게 혐오와 배제, 차별의 정치를 끝내고 공존과 포용의 정치가 일상이 되게 할 것인가. 윤석열 내란의 발원지, 국가보안법과 혐오의 근원은 어디서부터인가.

2024년 내란의 발원지를 찾아

1925년, 일제는 생각을 처벌하는 법률, 치안유지법을 제정 시행한다. 일본 내 공산주의 운동가들보다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더 가혹하게 적용된 치안유지법은 ‘위험하다’고 여겨진 독립운동가들의 생각을 바꾸는 전향을 강제했다. 치안유지법은 1945년 10월 미군정에 의해 조선인을 차별하거나 억압하는 법률로 지목되어 폐지된다.

그러나 종전 직후 형성된 냉전체제와 미국의 반공국가 건설 기획 아래, 치안유지법은 3년 만에 국가보안법으로 되살아난다. 국가보안법은 제정 후 1년 동안 1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투옥하고, 대대적인 전향 강제를 통해 30여 만 명의 사람들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시켰다가, 한국전쟁이 나자 즉결처형하거나 투옥하였다. 제주 4.3 항쟁에서 군경과 우익단체의 가족 대살, 주민 몰살의 제노사이드는 한국전쟁 시기 각지에서 되풀이되었다. 연좌제와 신원조사,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철저한 통제는 남북대결상황으로 정당화되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공안경찰을 동원해 유학생, 교포, 어부, 재일동포 등을 간첩으로 둔갑시키며 정권을 유지했다.

극우 집권세력의 학살과 고문은 포고령, 계엄령, 국방경비법, 비상사태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 긴급조치, 국가보안법 등으로 합법성의 외양을 갖추었다. 이 숱한 법률들은 모두 제정 몇 년 뒤 폐지되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만은 1991년 공산권 국가와 교류를 처벌대상에서 제외하느라 개정된 것 외에는 지금도 그대로다. 1991년 남북합의서 체결, 2000년 6.15 선언으로 남북 당국간 상호 인정이 이루어진 셈이나, 국가보안법은 북한 사람을 만나거나 북에 동조하는 말을 한 국민을 계속하여 처벌했다. 수십 년 전 폐지된 특별조치령 등은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청산 작업 이후 속속 위헌으로 선언되었지만, 국가보안법의 주요 조문들은 ‘종북 반국가세력’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과거의 국가보안법 재심사건들에서는 재판부가 유족들에게 고개숙여 사과하며 무죄판결문을 쓰지만, 현재의 국가보안법 사건들에서는 여전히 북의 위협과 국가보안법의 규범력을 들어 중형을 선고한다.

윤석열은 대통령 후보 시절 ‘멸콩’ 캠페인으로 시작하더니 ‘반국가세력 척결’ 계엄으로 끝을 맺었다. 윤석열 집권의 밑받침도, 내란의 근거도 모두 국가보안법이다. 지난 대선 극우세력의 재집권 시도는 시작부터 끝까지 북과 중국, ‘종북 빨갱이’에 대한 혐오 표현으로 채워졌다. 내란의 뿌리를 뽑으려면 국가보안법 폐지가 반드시 필요하고, 혐오표현 규제가 시급하다.

사상통제의 역사 100년을 돌아보고 국가보안법 폐지의 힘을 모으자

<치안유지법-국가보안법 사상통제의 역사 100년>> 기획강의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2024년 내란의 뿌리를 찾는다. 그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치안유지법을 상세히 파악하는 데서 시작하여 군사독재 시기를 거쳐 민주화 이후에도 온존한 사상통제의 실상을 알아보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진 혐오와 폭력의 단면을 살펴본다. 윤석열 내란 사태에 즈음하여 다시 크게 드러난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도 함께 힘을 모으고자 한다.

첫 강의는 홍종욱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의 <사상통제법으로서 일제하 치안유지법>으로, 일제가 치안유지법으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실태를 알아본다. ‘사상이 불온한 자’에 대한 혐오의 연원이 드러날 것이다. 치안유지법이 종전 이후 일본과 한국에 각각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확인한다.

다음으로 강성현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장의 <이승만의 국가보안법 제정과 제노사이드> 강의가 이어진다. 1948년 국가보안법 제정의 정치적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치안유지법과 국가보안법의 유사성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이승만 정권 시기 제노사이드와 국가보안법의 연관성, 최근 극우의 이승만 기념사업 추진의 배경과 문제점도 확인할 수 있다.

김동춘 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의 <사상통제의 역사 100년, 혐오와 폭력에 맞서기>는 앞의 두 강의로 살펴본 치안유지법 제정 이후 100년 역사 속에서 한국의 사상통제제도의 본질을 분석하고, 사상통제제도로서 국가보안법의 기능을 확인한다. 또한 최근의 내란 사태에서 크게 불거진 극우세력의 혐오·폭력과 국가보안법의 연관성을 분석한다.

마지막 강의는 <혐오표현 규제와 국가보안법 폐지>로, 필자가 맡는다. 한국사회에서 사상과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혐오표현 문제가 매우 심각함을 확인하고, 혐오표현은 왜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없는지 본다. 혐오표현 규제를 위한 제도 개선과 그 중요 내용으로 국가보안법 폐지의 필요성을 되새긴다.

사상통제의 역사 100년을 더 이어가지 않기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의 힘을 모아낼 시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강의 내용은 이후 단행본으로도 출간할 예정이다.

참고로, 강의를 전후하여 함께 읽으면 좋을 강사진의 저서를 소개한다.

* 홍종욱(2024), 『일제의 사상통제와 전향 정책』, 동북아역사재단
* 강성현(2024), 『다시,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 김동춘(2024), 『권력과 사상통제-한국은 사상통제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왔나』, 역사공간
* 이정희(2019),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 들녘

유튜브 등 온라인으로 함께 할 공간도 열릴 예정이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마음을 더하실 분들의 후원에도 먼저 감사드린다.



참여 신청 : https://bit.ly/100년기획강좌 또는 큐알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